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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이제는 나이가 많은 반려동물의 사진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by 드립오어드립 2022. 2. 4.

2000년 초반, 냥갤 등에서 고정닉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반려동물 사진을 공유하던 시절,

각종 개/고양이 반려인들이 직접 도메인 따서 운영하던 개인 홈페이지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소위 열 살이 넘은 반려동물의 사진을 보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당시 폰카의 화질이란 ... 어떻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고

DSLR에서 미러리스로 가네 마네 하는 시기라 .. 지금처럼 서사가 있는 사진만큼이나 그 '장면의 역동성'이 게시판에서의 인기의 지표와도 같았다. 각자의 똑딱이와 풀프레임과 천장바운스를 뽐내며, 날고 뛰고 공중에 멈춰있는 사진이 인기를 얻던 시기다.

홍수처럼 올라오는 어리고 예쁘고 털결이 빛나며 어린 근육이 팽팽한 가죽 아래에서 물결치는 게 그대로 보이는 어린 고양이들의 사진 틈에

이따금 올라오는, 이제 더 이상 빛나지 않는 털가죽을 가진, 그렇지만 주인이 한없이 쓰다듬어주어 납작하고 가지런한 털결이 보이는, 가장 편안하고 낡은 쿠션 위에서 볕을 쬐며 쉬는 모습들이 전부였다. 

 


 

길에 떨어진 자묘와 자견들을 주워다 게시판의 도움을 받아 살리는 것이 어떤 문화처럼 자리잡혀가던 시기였다. 그땐 많아야 예닐곱가지의 처방식, 한두가지의 초유를 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고, 당연히 어려서 어미와 떨어진 어린 녀석들은 게시판에 올라와 제 때 경험 많은 분들의 댓글과 지원에 힘입어 살아남으면 다행인 수준이었으며,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 어린 녀석을 살리는 것이 어떤 기본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유모르게 아픈 개/고양이들이 많았고, 동물사료는 지금보다 훨씬 질낮은 원료로 만들어진 탓에 원인 모를 신장질환이 반려동물을 앗아가던 시기였다. 

 

츄르라는 것을 일본에서 사오고, 오뎅꼬치라고 부르는 장난감을 입양보낼 때 애지중지 싸 보내 주기도 했다. 

 


갑자기 뜬금없는 옛생각이 떠오른 건,

늙은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이제는 인스타든 트위터든 블로그든... 어디에서나 이제 쉽게 볼 수 있구나 싶어져서.

전에 해외 웹을 돌며 노묘들의 사진을 모으고, 털가죽과 홍채와 안구, 잇몸, 관절의 노화로 인한 변화를 나누고자 그렇게 애썼었다. 애써야 했던 게... 늙은 반려동물을 병원비를 들여 가며 치료해내는 문화는 아직 아니었기에. 오히려 안락사가 당연하던 시기였기에. 온라인에 믿을 만한 근거를 가진 정보는 부족한데 당장 개 고양이들은 아프고, 그러다보니 서너명 정도 되는 노견노묘 반려인에게 백여명이 달려들어 질문해가며 본의아니게 괴롭히던 장면이 생생했기에. 

 

그 시간을 견뎌 20여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반려용품을 인테리어나 취향에 따라 고를 수도 있다! ㅋㅋ 예전의 캣타워는 왜 그리 인조밍크 범벅이었던지.

처방식도, 알러지가 있는 반려동물을 위한 특정원료 제거 사료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한두명의 반려인들이 직접 일본의 제조사와 연락해서 들여와 소분하지 않아도 된다.

이게 다.. 그 때의 반려인들이 몸과 시간을 갈아넣어가며 정보를 남기고 교류하고 그게 쌓이고, 글로벌 반려동물 식품 제조사를 괴롭힌 덕인 것 같다. 

 


 

이제 다시 냥줍을 한다면, 그때처럼 울며불며 사방에 전화하지 않고도 몇 녀석쯤 쉽게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설탕물을 먹여 가며 살려내 입양보낸 굿보이, 망토와 르마 자매, 흰둥이, 여우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이야기

 

이제 더 많은 반려동물들이 아무 걱정 하지 않고 반려인과 오래 함께 했으면. 

나보다 어렸던 녀석들이 나보다 먼저 치매가 오는 걸 보는 것은 정말 아픈 부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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